
고백하자면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엄마와 같이 자던 아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엄마와 떨어져, 그리고 심지어 친구나 친척 집에서 엄마 없이 잘 때면 엄마가 보고 싶어 밤에 울던 아이였다.
21세기에 구대륙으로 다시 돌아오는 일은 마치 시대를 역행하는 일같이 느껴졌다. 아직도 현금을 쓰고 집 현관문을 키로 열고, 종이로 된 원본을 중요시하는 이 사회에서 어떤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이번 여행이 끝난 후 나의 다음 거처를 정해야 한다면 경제적 성장 발전 가능성도 크고 스쿠버다이빙도 쉽게 다닐 수 있는 동남아시아 어디 대도시가 좋겠다고 홀로 생각했다.
이곳으로 돌아오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더할 나위 없이 고요하고 평화롭던 겨울의 뉴질랜드 쿡스비치에서, 그 아름다운 해변가를 두고 향수병을 앓던 앙트완에게 있다. 항상 낯선 곳을 동경하고 그리워하는 나는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그의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을 나도 한 번 가져볼 수 있을까? 또한 돈을 벌고 나를 먹이고 입히는 삶의 큰 조각이 이곳에 있었기에,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정겨운 포옹이 있는 곳이기에.
이곳을 떠난 게 마치 어제였던 것처럼, 그동안 우리의 여정은 마치 꿈이었던 것처럼 다시 돌아온 튀빙엔은 정말이지 똑같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거기서 오는 큰 안정감이 있다. 집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만나는 다양한 인종에, 각자 다른 스타일의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이 사회가 주는 고요함이 있다.
간단히 짐을 풀고 커피와 직접 구운 케이크를 먹으며 한 차례 대화를 나누고 나니 금세 어두워졌다. 시차 때문에 연신 하품이 나왔고 얼른 쇼파베드를 펼쳐 잠자리를 만들어 누우니, 마치 어릴 때 친척 집에서 하룻밤 잘 때 느꼈던 낯설고 어색하고 조금은 외로운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수도 없이 낯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던 나날들이 무색하게 정말이지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생각해 보니 오랜만에 한국에 이렇게 오래 있었다. 부모님 집에서도 이렇게 오래 있어 본 적이 언제였던가. 울음을 참으며 이별을 고하는 엄마의 얼굴이 자꾸 떠올라 한국을 떠나며 울어 본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엄마 아빠 품 안에서,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사는 일상이 주는 온기와 안정감은 나이를 먹어도 그대로인 것을.
그 어느 때보다도 나의 시차가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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