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꿈을 꿨다. 꿈이란 건 깨자마자 뭔가 아주 거창하고 신의 계시처럼 의미 있게 느껴지기 마련이지만 해가 뜨고 나면 신기루처럼 사라지기에 그 전에 기록해 둔다.

꿈속에서 나는 누군가와 결혼했다. 한국 남자고 그는 아주 서글서글하고 상냥하고 웃는 얼굴상인 남자였다. 나는 그와 어떻게 결혼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럼 웃는 얼굴상인 남자는 얼굴 하나 찌푸리지 않은 채 또 웃으며 어떤 동영상을 보여준다. 작년 3~5월쯤 우린 만났으며 동영상 속 나는 술에 취해 곤히 잠들어있으며 그런 나를 나의 남편과 남편의 친구, 그리고 나의 친구 한 명이 동영상으로 찍다 웃고 있는 그들의 얼굴을 비추며 끝난다. 시간상으로는 작년 3-5월 같지만, 나는 추운 겨울로 기억한다. 꿈속의 나는 나의 남편과 어떻게 사랑에 빠졌고 어떻게 결혼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정도로 그 시기가 힘들었다. 이 꿈을 꾸고 난 후에야 내가 정확히 똑같은 내용의 꿈을 두 번째 꾸는 것임을 기억한다. 이 꿈을 꾸고 난 직후 깨어났을 땐 새벽녘 해가 아직 뜨기 전이였고 비몽사몽인 상태로 마음이 몹시 심란했다. 혹시 세계엔 수많은 평행 세계가 있고 어떤 평행 세계에 또 다른 내가 살고 있는 게 아닐까? 그 평행 세계의 나는 지금 서글서글한 한국 남자와 결혼했다. 나는 사실 이 한국 남자가 누군지 알고 있는데 그는 바로 내가 거의 한 번도 놓치지 않고 본 현실 연애 프로그램에 나왔던 어떤 남자 출연자였다. 지난겨울 Y가 지난 회차를 보며 내가 이 남자를 좋아할 것 같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그땐 그런가? 하고 무심코 넘겼는데 사실 그렇게 수많은 회차를 봤음에도 그냥 머릿속으로 어떤 남자 출연자를 떠올리라면 아무도 바로 제대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남자의 얼굴은 그릴 수 있다.
이 사실을 생각하니 나의 평행 세계 이론이 공고해지는 것이다. (그는 그 프로그램에서 만난 여자와 결혼했다. 다른 평행세계에선 나와 그 남자가 결혼한 것이다)
그렇담 평행 세계의 나는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정도로 힘든 일이 무엇이 있었을까?
그 평행 세계의 나는 졸업 후 여행을 떠나지 않고 한국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한국에서 한국 남자를 만났지.
그럼, 그 무렵 무슨 힘든 일이 있었을까? 졸업보다 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전 첫 애인의 투병 소식이 있고 그러고 난 후 몇 년 후 그의 사망 소식을 듣는다. 그걸 받아들이는 게 꽤 큰 일이었다. 그러나 그 힘듦은 다행히 친구들 덕분에 잘 넘길 수 있었다. 이 세계의 나에겐 그 시기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힘든 일은 아니었단 이야기다. 그렇담 평행 세계의 나는 그 일을 겪을 때 옆에 Y와 J가 없었다는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절망스럽다. 평행 세계의 내가 불쌍하다.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다.
이런 심오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옆에서 아주 곤히 자는 A의 얼굴이 보인다. 이 세계의 나도, 어느 평행 세계의 나도 서글서글하고 착한 남자가 옆에 있구나. 그건 다행이다 싶었다.
어제 같이 걷는데 A가 갑자기 more vivid dream을 꾸려면 어떤 음식을 먹거나 어떤 생활 습관을 지녀야 하냐고 물었다. 나는 너무나 어이없는 질문에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는 진지했다. 이런 엉뚱하고 이상한 질문을 진지하게 할 수 있다니.
요즘 간헐적으로 아픈 오른쪽 골반 때문에 고관절 스트레칭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트위터에서 골반이 트라우마나 온갖 감정적인 신경이 담긴다고 그래서 실제로 치료할 때 골반 운동을 하기도 하고 요가에서 해피베이비를 할 때 우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요 며칠 고관절을 풀어줬다고 무의식에 잠겨 있던 나의 슬픈 기억도 풀어진 건가?

이제 해는 중천이고 하루의 중간에 있으니 오늘 꾼 꿈도 내가 새벽녘에 했던 생각들도 다 어처구니없게 느껴진다.

Leave a comment